술을 하도 먹다 보니, 나의 숙취 해소 방법도 루틴화되고 있다.
일단 잠을 충분히 자되, 중간중간 깼을 때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하며,
느즈막히 일어나서는 든든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고, 카페인을 충전한 뒤, 시원한 아이스티를 먹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방법으로도 쉽게 숙취가 떨어지지를 않는데,
아무래도 술을 줄일 때가 된 것 같다.
(카페 글에 술냄새 풍기며 시작해서 죄송합니다.)
내 보통의 카페인 충전소는 메가커피나 빽다방인데,
이 날은 나름대로 맛집 블로거의 본분을 다하여 평소 관심 있던 에스프레소 바로 향했다.
연희 에스프레소 바
일전에 타지에서 너무 좋았던 에스프레소 바를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서
나 사는 동네에도 그런 곳이 있나 찾아봤더니
의외로 과일산도 맛집으로 소문난 연희 에스프레소 바가 있더라.
먼저 자리를 잡고 주문하는 방식이다.
에스프레소 바라면, 자고로 바테이블이 있어야 한다. 바잖아!
서서 마시는 공간이 있으면 더욱 이탈리아 감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의 카페에서는 차용하기 힘든 방식인 것 같다.
친구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커피가 단돈 2유로인 카페에 방문한 적이 있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앉았는데, 의외로 잔당 4.5달러를 받길래 물어보니
서서 마시는 가격과, 앉아서 마시는 가격이 다르다고 했었다.
당시엔 조금 놀랐지만,
이 날 내가 몇 분 만에 마시고 나왔는지를 생각하면
그러한 가격차별은 매우 합리적인 것 같다.
원하는 메뉴를 종이에 적어서 주문하는 방식이다.
주문서 뒷면에 이름을 적으면 스타벅스처럼 이름을 호명해주시는데,
나는 바테이블에 앉았기 때문에, 이름을 적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나 보다.
에스프레소 바 답게, 에스프레소 메뉴가 상당히 많이 구비되어 있다.
과거 나에게 에스프레소는
카페 처음 가보는 사람이 제일 싼 거 시켰다가
결국엔 "하유 쓰브라(욕 아님) 여 물좀 넣어 주소!" 하게 된다는
놀림거리의 매개가 되는 메뉴였을 뿐인데
요즘은 확실히 에스프레소만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
두 잔을 주문했다.
에스프레소에 크림을 추가하거나, 코코아를 추가하거나, 잼을 추가하거나
다양한 옵션들의 조합을 달리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최대한 맛이 겹치지 않도록 고민하여
시그니쳐 메뉴인 연희 에스프레소와 스트라빠짜또를 주문했다.
구두(verbal)로 주문하는 방식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쓰러뜨려 빠따치라는 폭력적인 고객이 될 뻔 했다.
난 유독 카페에서 주문을 이상하게 하는 것 같다.
일본어 잘 못 하던 시절(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릿쿄대 카페에서
오늘의 커피(本日のコーヒー) 대신 일본의 커피(日本のコーヒー)를 주문한 적이 있다.
옆에서 빵터진 하루에상 보고있나.
두 잔 시킨 고객님 맞으시죠? 하며 건네받은 에스프레소 두 잔
왼쪽이 쓰트롱파바로티, 오른쪽이 연희 에스프레소이다.
에스프레소와 코코아, 설탕을 넣고 휘저어 만든 쓰트릿짜파게티
가볍게 한 입 맛보고 쇽쇽 섞은 후 바로 원샷해버렸다.
꽤 맛있었다. 고소하고 달달해서 유치원생도 야쿠르트 대신 즐겨 마실 수 있을 정도.
나는 커피의 맛을 고상하게 느끼는 편은 아니다.
그냥, 이런 에스프레소는 쓴맛이 확 튀어야 마신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게.. 이탈리안 로스팅이니까?
연희 에스프레소 바의 에스프레소는 그렇지는 않았고,
평범히 맛있게 매일 마실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엔 쓰어다가스파초 말고 그냥 에스프레소만 주문해서 다시 맛보고 싶다.
연희 에스프레소는 마시는 방법도 따로 있다.
먼저 크림과 에스프레소를 맛본 뒤,
오렌지 껍질 잼이 올려진 티스푼을 넣어
고르게 고르게 저어 마시면 된다.
이 가게만의 시그니쳐 메뉴라고는 적혀 있지만
에스프레소에 오렌지와 크림이 들어간 메뉴는
전국적으로 꽤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프레소와 오렌지는 원래부터 매우 잘 어울린다.
여기에 추가된 크림이 그 조합의 비비드함을 좀 부드럽게 풀어내주는 것 같았다.
4분만에 두 잔을 비우고 하고,
오늘의 회전률을 담당하는 고객이 되어 가게에서 나섰다.
특히 더 좋았던 점
1. 에스프레소를 주문해도 놀림받지 않는 카페
2. 너무 너무 친절하신 직원분들
아쉬웠던 점
1. 화장실이 없대용
연희 에스프레소 바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39 1층
0507-1445-8897
영업시간: 평일 09:00~17:00, 주말 12:00~18: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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